내향인에게 '나대기'를 권합니다.
제 아내는 그림책 작가이자 프리랜서 크리에이터입니다. 얼마 전 집 근처 작은 공유서재에서 전시회 참여 제안을 받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어렵사리 마음을 먹고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거절을 못해서 하게 된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ㅎㅎ) 저는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일단 해 보라고 아내를 부추기는 편인데, 내향인인 아내에게 이런 자리는 늘 쉽지 않았거든요.
걱정이 무색하게도, 전시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좋은 기운(?)이 들어오는 게 옆에서도 느껴집니다. 한 친구는 전시장으로 꽃을 보내 주었고, 멀리 사는 인연들은 이를 핑계 삼아 얼굴을 보러 와 줬습니다. 근처에 사는 조카들도 슬쩍 찾아와서 응원 글을 남기고 갔구요. (전시와 직접 관련된 일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는 기다리던 출판사 미팅도 잡혔습니다. 소소하지만 이렇게 '나대는' 활동을 통해 새로운 기회가 하나씩 찾아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a.k.a. 여둘톡)의 85화 제목은 ‘나대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여성들이 지나친 자기검열 때문에 자신의 재능과 성과, 가능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비슷한 고민을 해 본 사람들을 응원하는 에피소드였어요.
듣는 내내 회사에서 겪었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팀 매니저 승진을 제안하면 여성분들은 “제가 그걸 할 수 있을까요…”라며 꽤 높은 비율로 고사한 반면, 남성분들은 “감사합니다,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게 저만 받은 인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 크리스틴 엑슬리(Christine Exley)와 저드 케슬러(Judd Kessler)는 사람들에게 같은 시험을 보게 한 뒤 자신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게 했는데, 똑같은 점수를 받고도 여성이 남성보다 자기 성과를 일관되게 낮게 평가했다고 해요. 실력의 차이가 아니라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였던 셈이죠.(https://www.nber.org/papers/w26345)
비슷한 이야기가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에도 나옵니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로 잘 알려진 데이터 과학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책으로, 원제는 Don't Trust Your Gut입니다.)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는 저에게 특히 흥미로웠던 책인데요.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데이터가 일상의 선택과 의사결정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재미있는 사례로 풀어냈거든요.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 중 성공한 화가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왜 어떤 화가는 성공하고, 어떤 화가는 그러지 못할까요? 새뮤얼 P. 프레이버거의 연구에 따르면,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번째 유형은 같은 갤러리에서 계속 전시를 이어 가는 화가들입니다. 보통 자기가 사는 나라의 동일한 갤러리에서 반복적으로 전시회를 엽니다. 다른 유형의 화가들은 세계 곳곳의 여러 갤러리를 오가며 전시를 합니다. (물론 이 시점에는 유명한 화가가 아니니, 세계 곳곳의 작은 갤러리를 전전하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이렇게 여러 곳에 전시하며 기회의 폭을 넓힌 화가들이 앞의 화가들보다 성공할 확률이 여섯 배 이상 높았다고 합니다.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얼굴을 자주 비춰야 한다는 말은 많이들 해 왔습니다. 하지만 데이터가 알려 준 비밀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어요. 바로 ‘다양한 곳에’ 얼굴을 비추는 것.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누군가에게 발견될 확률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리콘밸리에는 ‘운의 표면적(Luck Surface Area)’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은 내가 하는 일의 양과, 그 일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알리느냐에 비례한다는 개념입니다. 아내의 이번 전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동네 작은 공유서재 한쪽에 그림 몇 점을 걸었을 뿐인데, 그만큼 넓어진 표면적 덕분에 꽃이 도착하고, 오랜만의 얼굴들이 찾아오고, SNS 팔로워가 조용히 늘어나고, 그림책 미팅이 잡혔으니까요.
그러니 내향인 여러분, 오늘은 조금 나대 보는 게 어떨까요? 여러분의 ‘나대기’를 응원합니다. 😄